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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 탐방

빈티지 도자기 수집의 매력: 기억을 담은 그릇들에 빠지다

by 다정한스푼 2025. 8. 3.

 

빈티지 도자기 수집의 매력

오래된 도자기 한 점이 단지 물건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빈티지 도자기는 시대의 공기와 감성을 품은 작은 조각으로, 수집의 대상이자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이 글에서는 빈티지 도자기의 수집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임을 조명한다. 각 시대를 반영한 디자인, 손맛이 남아 있는 흔적, 작가의 서명,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이 이 작은 그릇 하나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며, 빈티지 수집의 감성적·문화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릇 하나에 담긴 시간의 층

“이 그릇은 1972년에 도쿄에서 만들어졌어요.” 어느 날 도자기 상점에서 사장님이 조심스레 꺼내 놓은 작은 찻잔 하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표면엔 균열처럼 퍼진 크랙 유약이 있었고, 손잡이엔 미세한 칩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미세한 흔적이야말로 시간의 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문장이었다. 빈티지 도자기를 수집한다는 것은 단지 오래된 물건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일상 속으로 불러오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예술적 경험이다. 유약의 발림, 흙의 색감, 찍혀 있는 작가의 도장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해 가는 여정은 오롯이 개인의 시간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和食器の時間(일본 식기의 시간)”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그릇이 지닌 시간을 중시하는 문화가 깊다. 크랙이 있는 유약을 ‘경년(経年)의 아름다움’이라 부르며, 사용하는 사람과 함께 도자기가 나이 들어간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우리나라의 분청사기, 옛 청자에도 그대로 닿아 있다. 이 글에서는 빈티지 도자기의 수집이 왜 매력적인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은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따뜻한 결을 남기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때로는 단 한 점의 도자기가, 한 사람의 일상을 조용히 바꿔놓을 수 있으니까.

도자기 이미지들
도자기 이미지들

이미지 출처: Pixabay 이미지 스타일 참조 

그릇 속에 숨겨진 이야기 찾기

첫째, 빈티지 도자기는 시대를 반영하는 디자인의 집약체다.
1950~70년대 일본 미노야키, 북유럽 핀란드의 아라비아(Arabia), 프랑스의 리모주(Limoges)까지—각 시대와 지역의 미감은 도자기 디자인에 그대로 투영된다. 60년대 일본 도자기에서는 미드센추리의 직선적 패턴이 등장하고, 70년대 스웨덴의 스톤웨어에서는 거칠고 둔탁한 질감의 볼륨감 있는 형태가 나타난다. 도자기 하나가 그 시대의 시선과 철학을 보여주는 창이 되는 셈이다.
둘째, 손으로 만든 흔적이 개성과 진정성을 더한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과 달리, 작가가 손으로 만든 빈티지 도자기는 선의 흔들림, 유약의 불균형, 바닥의 지문 자국까지도 고유한 정체성이 된다. 이 흔적들은 인간의 개입이 만들어낸 결과로써, 도자기가 단지 물건이 아닌 예술적 개체로 존재하게 만든다.
셋째, 수집은 발견의 기쁨을 동반한다.
빈티지 도자기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발굴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각 도자기를 찾는 과정은 마치 보물 찾기와 같다. 벼룩시장, 소도시 골동점, 혹은 경매 플랫폼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릇 하나에 담긴 이야기와 작가, 제작 연도 등을 추적하는 행위는 단순히 ‘소유’를 넘어 ‘탐구’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넷째, 사용하면서 완성되는 아름다움
빈티지 도자기는 단지 진열장 안에 가두어둘 대상이 아니다. 직접 음식을 담고, 차를 따르고, 손에 쥐어보며 감각을 체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용된 흔적(使い跡)이 오히려 가치를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색감이 깊어지고, 사용자의 손에 맞게 감각이 적응되는 그릇은 더 이상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의 그릇이 된다.

 

도자기를 수집한다는 건, 시간을 모으는 일

내게 가장 소중한 그릇은 사실 가장 값비싼 그릇이 아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쓰던 미색 찻잔 하나. 유약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고, 바닥엔 가마에서 구운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그 그릇을 손에 쥘 때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조용히 차를 마시던 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이처럼 빈티지 도자기 수집은 단지 취미나 장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모으는 행위이자, 기억을 다시 손에 쥐는 방법이다. 그릇 하나에 담긴 미감과 사연은, 수집자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만든다. 만약 당신의 일상에 따뜻한 결이 필요하다면, 오늘 한 점의 오래된 그릇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 거기에 담길 음식보다, 먼저 당신의 기억이 녹아들 테니까. 빈티지 도자기—그건 결국,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