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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유약의 시적 언어: 도예에서 색을 읽는 법

by 다정한스푼 2025. 7. 27.

 

도예에서 색을 읽는 법

도자기의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서 창작자의 감정, 철학, 자연과의 관계를 담아내는 하나의 언어이자 시적 표현이다. 유약을 어떻게 선택하고 태우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며, 같은 형태의 그릇도 색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를 품는다. 본 글에서는 도예에서 색과 유약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공예를 시로 승화시키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산화와 환원, 투명유와 불투명유의 특성, 색이 만들어내는 상징성 등을 통해 도자의 감각적 깊이를 들여다본다.

색은 그릇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얀 백자 위에 은은히 흐르는 청색의 물결. 그것은 단지 시유(施釉)의 결과만은 아니다. 도자기의 색은 흙과 불, 공기와 시간이 빚어낸 시의 언어다. 우리는 종종 색을 시각적인 정보로만 인식하지만, 도예에서의 색은 이야기이자 감정이며, 기억이고 존재다. 물질이 만든 색이 아니라 마음이 머문 색이다. 도예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흙은 유약이라는 또 다른 층을 만나, 가마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의 색이 태어난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이 색의 세계는 오히려 그 우연성 속에서 아름다움을 피운다. 이는 마치 시가 때론 언어를 벗어나 감정의 흐름으로 흘러가듯, 색 또한 틀 안에 가두기보다는 흐르게 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것과 같다. 이 글에서는 도예에서 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유약은 어떻게 그 색의 풍경을 만들어내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기술적 설명도 함께 담되, 보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독자와 색의 언어로 대화해보고 싶다. 어쩌면 당신의 마음 한편에도, 지금껏 설명할 수 없었던 어떤 색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유약으로 색을 낸 도자기들
색을 표현한 도자기들

이미지 출처: ChatGPT 이미지 스타일 참조

불, 흙, 유약이 빚어낸 색의 시학

첫째, 색은 흙의 성질에서 시작된다. 흙의 철분 함량이 높으면 붉거나 갈색 계열의 색이 강하게 나타나고, 백토나 자기는 상대적으로 순수한 유약 색감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 이러한 흙의 바탕은 유약이 드러내는 색의 ‘캔버스’가 된다. 흙과 유약의 조합은 단순히 ‘어울림’의 문제가 아니라, ‘조응’의 관계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드럽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강렬히 대립함으로써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둘째, 유약은 색의 두께다. 유약의 농도, 도포 방식, 흐름의 방향은 마치 시구(詩句)의 리듬처럼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같은 청유라도 얇게 바르면 연하고 투명한 하늘빛을 띠며, 두껍게 바르면 깊고 진한 청색으로 바뀐다. 때로는 유약이 흘러내린 자국조차 하나의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우연성’은 작가의 계산 속에 숨겨진 의도일 수도, 가마 속 불의 장난일 수도 있다.
셋째, 가마의 대기 방식에 따라 색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산화 소성은 대체로 맑고 선명한 색을 만들어내며, 환원 소성은 짙고 중성적인 색감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구리 성분은 산화에서는 초록빛, 환원에서는 붉은빛을 나타낸다. 같은 유약과 같은 온도에서도 공기의 양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색이 나오기 때문에, 도예가들은 가마 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긴장 속에서 색의 운명을 기다린다.
넷째, 색은 상징이 된다. 푸른색은 고요함과 사색을, 흰색은 순수와 비움을, 검은색은 깊음과 무게감을 전한다. 특히 한국 도자의 백자는 단순한 ‘흰색’이 아니라, 자연광 아래서 수묵처럼 변화하는 회백색이다. 그 미묘한 중간톤은 정제된 감정, 절제된 미를 상징하며, 현대에도 많은 작가들이 그 색을 이상적인 감성으로 여긴다. 이는 단지 미적 선호를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집단적 감각의 반영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색은 어떤 온도를 가졌나요

도자기의 색을 들여다보다 보면, 언젠가 느꼈던 바람의 색, 어릴 적 이불속에서 본 햇살의 색, 누군가의 웃음 속에서 느꼈던 따뜻한 감정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유약 속에서 피어난 색이 우리 안의 감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색에 마음이 머무른 적이 있다. 그 색은 반드시 시각적인 것이 아니어도 된다. 손에 닿는 감촉, 불을 견뎌낸 재질, 그리고 시간이 남긴 흔적까지—모두가 하나의 색이다. 도예에서의 색은 결국 완성을 향한 과정이 아니라, 발견과 수용의 연속이다. 도예가는 자신의 뜻대로만 그 색을 만들 수 없기에, 기다리고, 관찰하고, 받아들인다. 이것은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도 비슷하다. 예상한 색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래서 도자기의 색은 정답이 아니라 이야기이며, 하나의 감정이다. 이제 당신이 도자기를 볼 때, 혹은 만들게 된다면, 그 색을 눈으로만 보지 말았으면 한다. 그 안에 깃든 불의 숨결, 물의 기운, 시간의 흔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의 감정이 있음을 기억하길. 당신이 좋아하는 색은 어떤 온도를 가졌는지—그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그건 아마 당신의 시이기도 할 테니.